제목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실사요구
이름 :
연구소 Read: 215   Date: 2010.07.15
종묘와 여주 영릉 난개발에 대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실사요구

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인 종묘와 여주 영릉에 대한 난개발에 대하여 우리 정부 당국에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학자들은 세계유산에 피해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종묘앞 난개발은 세계유산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유네스코에 이 문제를 진정하겠다고 정부 당국에 경고했으나 우리 정부는 세계유산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2010년 7월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Kishore Rao 사무총장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앞의 고층 건물군 건립과 여주 영릉의 여주댐(보)에 의한 조선왕릉의 피해예상에 대하여 유네스코의 정확한 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첨부 : 유네스코에 보내는 서한(국문/영문)

Kishore Rao
deputy director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CLT/WHC)

안녕하십니까?
세계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러 애쓰는 UNESCO World Heritage Centre의 Kishore Rao 사무총장의 노력에 존경과 경의를 보냅니다.

저는 한국에서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시민운동을 하는 황평우(Hwang Pyung woo)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문화유산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과 각종 난개발과 잘못된 정책으로 훼손되어 가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저와 저의 동료들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많은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세계유산의 경관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나 문화재청과 같은 정부 기구가 이러한 세계유산을 헤치는 개발 사업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1. 세계유산 종묘 200m 이내에 높이 55m의 고층건물이 신축됩니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습니다.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정전은 처음에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 짓고, 그 후 영조 헌종때 증축하여 현재 태실 19칸으로 되어있습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조선시대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향을 지냈고, 영녕전에는 매년 춘추와 섣달에 제향일을 따로 정하여 제례를 지냈으나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정하여 종묘제례라는 제향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을 포함하는 종묘제례악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종묘의 주전인 정전은 건평이 1,270㎡로서 동 시대의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로 추정되며, 종묘의 건축 양식은 궁전이나 불사의 건축이 화려하고 장식적인데 반하여 유교의 검소한 기품에 따라 건립된 특수목적용 건축물입니다.

종묘는 한국의 일반 건축물과 같이 개별적으로 비대칭구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의례공간의 위계질서를 반영하여 정전과 영녕전의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 기둥의 굵기를 그 위계에 따라 달리 하였습니다.

중국 주나라에서 시작된 종묘제도는 7대까지 모시는 제도로 시작되어 명나라 때에 와서 9묘 제도로 확대 되었는데 중국의 태묘에서는 태실이 9실에 불과하나 한국의 종묘만은 태실이 19칸인 매우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의 건물모습은 종묘제도의 발생지인 중국과도 다른 건축양식이며 서양건축에서는 전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건축유형입니다.

종묘제례는 종묘인 의례공간과 함께 의례절차, 의례음식과 제기, 악기와 의장물, 의례음악과 의례무용 등이 조화되어 있으며, 1462년에 정형화된 형태를 500년이상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적 의례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에 나타난 의례 절차, 음악, 무용 등은 중국의 고대문명을 바탕으로 형성된 하, 은, 주 시대의 의례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고대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 고대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문화유산 중의 하나입니다.

종묘제례악은 기악, 노래, 춤으로 구성되는데 세종때 처음짓고 세조때 다듬은 보태평과 정대업 22곡을 연주하고 그 동작이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것이 특징인 육일무 등의 춤을 춥니다. 신라향가나 고려가요가 오늘날 가사만 전하여 지는데 비하여 종묘제례악은 500년 전의 선율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하고 있어 그 의의가 매우 큽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전통건물로서 일반건축이 아닌 신전건축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많은 현대 건축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종묘의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칭하여지고 있을 만큼 건축사적 가치가 큽니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제227호), 영녕전(보물 제821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제 제56호)가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종묘는 제왕을 기리는 유교사당의 표본으로서 16세기 이래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이다. 종묘에서는 의례와 음악과 무용이 잘 조화된 전통의식과 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묘는 세계문화유산기준 (Ⅳ)의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입니다.

위험요소 발생 : 한국의 최대 지방정부인 서울시가 종묘앞 200m 이내에 55m의 건물 신축을 추진했고 이를 문화재청에서 조차 승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55m 건물 1동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세계유산 종묘앞에 약 20여동의 고층 건물이 군락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유산 종묘의 건축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소멸하게 됩니다.

2.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영릉이 댐(보)건설로 위험에 처해집니다.

조선 왕조는 1392년에 고려 왕조가 끝난 이후 시작되어 5백 년 이상의 지속된 역사를 지녔다. 조선 왕조 시대에 있었던 총 27대 왕과 왕비 및 추촌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일컬어 조선 왕릉이라 합니다.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 전통이 확고하게 드러나는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조선시대 때 강조되었던 ‘조상숭배’라는 유교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나라의 최고의 권위자로써 왕의 무덤을 신성화하는 전통이 형성되었습니다. 죽은 왕의 무덤을 웅장하게 만들고 참배함으로써 죽은 왕에 대한 숭배 뿐 만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왕의 권위까지도 더불어 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왕릉’은 유교적 질서에 맞춰서 능역을 조성하였습니다. (능침/성역-제향/성역과 속세가 만나는 공간-진입/속세) 왕릉의 형태는 총 여섯 가지로 나뉘는데 구분은 봉분의 형태에 따릅니다. (단릉, 쌍릉, 삼연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봉릉, 합장릉)

조선왕릉이 퍼져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서울 시내와 서울 동쪽, 서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실의 능역을 그 당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4킬로미터 밖에서 40킬로미터 안에 두도록 하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지역들을 풍수적 길지로써, 현 시대에도 서울 도심 속에서 녹지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2009년 6월 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 40기전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릉이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조영되었으며, 엄격한 질서에 따라 내부 공간을 구성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주목할 만한 신성한 공간을 창출하였고, 봉분과 조각, 건축물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탁월한 사례로 동아시아 묘제의 중요한 발전단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600년 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면서 살아있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독특한 장묘 문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당시 조선왕조의 세계관, 종교관 및 자연관을 바탕으로 타 유교 문화권 왕릉들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다. 또한 ‘조선왕릉’은 5백년 이상 존속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입니다. 당대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뿐 만아니라, 조선시대의 예술적 독창성이 뚜렷이 나타나있습니다. 끝으로 조선 왕릉에서 세기를 걸쳐서 지속되어 온 제례의식입니다.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로부터 전주 이씨 종약원으로 인해 현재까지 왕릉 제례가 지속되어오고 있습니다. 이 외에 국가 제례가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종묘 또한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왕릉‘은 조선시대에 강조되었던 조상숭배의 전통문화가 이어져 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기준 (III), (lV), (VI)에 적합합니다.
(III)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IV)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VI)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유산입니다.

위험요소 발생 : 세계유산 조선 왕릉 중 최고의 길지라고 여겨지고 조선 최고의 임금이신 세종대왕릉의 영릉이 영릉 뒤편 700m에 대규모 여주댐(보)이 건설됩니다. 만약 여주댐에 물이 차면 세계유산 영릉과 불과 30m만 이격되어 집니다.
이렇게 된다면 많은 량의 물이 영릉 밑으로 투입되어 영릉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물이 참으로 안개가 발생되어 조선왕릉의 석물들이 피해를 받게됩니다.

한국 정부와 문화재청은 영향검토를 해보지도 않은채 안전하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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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한국에는 세계유산 종묘와 조선왕릉이 각종 개발과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매우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도 정부편의 입장만 옹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유산센터는 한국에 실사단을 보내어 면밀한 현장검증과 미래 피해 예측을 조사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기타 구체적인 사항은 추후 협의를 통해 소통하기를 희망합니다.

2010년 7월 14일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황 평 우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 39 뉴파고다빌딩 211호

[영문]

Kishore Rao
deputy director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CLT/WHC)

Dear Mr. Rao,

Greetings,
I pay my respect for your effort at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er as a deputy director to preserve cultural heritages around the world.
I am Hwang Pyung woo, a civil activist for preservation of cultural heritages in Korea.
I am in charge of Cultural Heritage Policy Research Institute in Korea, working to adequately preserve and protect cultural heritages that are being damaged by excessive developments and wrong policies.
In the past years, my colleagues and I have produces many positive results while developing civil movement to preserve cultural heritages.
However, recently, incidents that can have critical effect on world heritages in Korea have occurred, which shows the insensitivity of Korean government or the organs of government, such as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garding developments that damage world heritages.

1. There will be a 55-meter-tall building within 200 meters of Jongmyo,

Throughout much of traditional Asian culture, including China and Korea, rite has been highly important, and in modern society preserving rite carries with it the meaning of maintaining basic social order. There are a number of rituals which are considered important forms of rite, and the most significant of these in Korea are the Jongmyo and the Sajik rituals. Jongmyo is the term used for a place where memorial services are performed for deceased kings, and Sajik is the term for a place where services for the Gods of Earth and Crops are performed. These rituals are symbols for nations themselves in that they guarantee order and successful ruling of the nation.

Consequently, due to the importance of these rituals, the Jongmyo and Sajik shrines where the rituals are performed are classic in their architectural grace, detail and beauty.

Although such facilities existed in Korea as early as the Three Kingdoms Period, those that remain today in Seoul are from the Joseon Dynasty(1392-1910).

The first Jongmyo of the dynasty was erected in Seoul in 1395, and the main hall, Jeongjeon, contained 7 rooms, One room was used for the memorial tablets of one king and his queen. The 4th king of the dynasty, King Sejong, had an additional hall, Yeongnyeongjeon("Hall of Eternal comfort"), built beside the main hall to house all of the tablets which could not be housed in the main hall. With successive reigns and an increasingly large number of memorial tablets, however, additions had to be made to the facilities.

Rooms were added from west to east until there ware a total of 19. The original Jongmyo, however, was destroyed in 1592, and today's Jongmyo was built in 1608. Jongmyo was located to the left of the main palace, Gyeongbokgung, and Sajik was built to the right (as viewed from the king's throne), a tradition of planning which goes back to ancient China. The main hill of the Jongmyo complex is called Yeungbong, and from it a number of smaller hills extend southward until they encompass the Jongmyo compound of the Jeongjeon, Yeongnyeongjeon and other auxiliary buildings. They were built according to terrain, however, and in totality they appear to the modern eye not to be very balanced in distribution. Jeongjeon is comprised of 19 identical rooms, and they are extremely simple with no ornamentation. However, the building as a whole is both grand and impressive, and the twenty thick, round pillars sufficiently project the dignity and grandeur of royalty. In front of Jeongjeon is an impressive 150-meter-long, 100-meter-wide elevated stone yard called "Woldae" which is used during ceremonies by musicians, dancers and other participants. The large stone blocks which compose the yard provide a striking and solemn atmosphere as they lay in silence before Jeongjeon, and the yard greatly complements the architecture. The Jongmyo ritual itself has been designated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by the government not only for its historical importance but for the splendor of the music, dance and ceremony.

Occurrence of Risk Factor : The city of Seoul, the biggest local government in Korea, has pushed ahead with construction of 55-meter-tall building within 200 meters of Jongmyo, Royal Ancestral Shrine, and even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has approved. It is not one single 55-meter-tall building we are concerned about, but the fact that about twenty of these sky scrappers will form a colony in front of Jongmyo, a world heritage. If this happens, the architectural, historical and cultural value of Jongmyo will be lost.

2. The World Heritage Youngneung is in danger for the construction of Yeojoo Dam.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119 tombs were constructed within the Republic of Korea. Each tomb is designated neung, won or myo depending on the royal status. Of these, 40 were royal tombs for Joseon Dynasty kings and their consorts (and there are a further 2 located in DPR Korea).

The tombs were built to honour the memory of ancestors, to show respect for their achievements, to assert royal authority, to protect ancestral spirits from evil and to provide protection from vandalism. A royal tomb was a sacred place where the deceased could “live” in the afterlife amidst dynasty-protecting ancestral spirits.
There are three keys to understanding the royal tombs: the topography of the site and the layout of the tomb; the types of burial mounds, the sites’ associated structures and the nature and aesthetic qualities of site-specific stone objects; and the rites associated with the burials as well as extant documents that verify the construction proc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sites were chosen according to pungsu (fengshui in Chinese) principles. Accordingly, outstanding natural sites were chosen, which were mainly along two mountain chains stretching to the north and south of the Han River that flows through present-day Seoul. The burial mounds, the “heart” of a royal burial ground, were usually placed in the middle of a hillside. Protected from the back, they face outward (to the south) toward water and, ideally, toward layers of mountain ridges in the far distance.

Royal Graveyard Divided into Three Areas: Burial, Ceremonial, and Entrance Areas

The burial chamber was located at the point where propitious energies are said to be concentrated and it was fortified with a dirt covering, creating the mound. With a low, curving wall and knoll at the back, energy is further directed toward the burial chamber.

In addition to the burial area, royal tombs consist of a ceremonial area and an entrance area, and each area has a different function and symbolic meaning. The burial area is the sacred place of the dead and it contains an open, grassy area, the burial mound and a spirit road that descends to a T-shaped shrine. The shrine is the centre of the ceremonial area and it is here that ancestral rites are conducted to symbolise the meeting of the living and the dead. The shrine is linked by a worship road to a red-spiked gate, the main entrance to the royal graveyard.

The entrance area, itself, lies beyond the gate and it contains the forbidden stream with a stone bridge, the house of the tomb keeper and additional buildings used for ceremonial preparations. The separation of the living and the dead is further symbolised by the nature of the roads: the chamdo, the worship road, links the main gate to the shrine and is shared by the living and the dead, while the sindo, the spirit road, links the shrine to the burial mound and is used solely by the dead.

Architectural Values Blended with Tangible and Documentary Heritage

The layout described above generally follows the layout prescribed as part of the Confucian ritual system. However, variation is found in the number and placement of burial mounds within a site, and this is categorised as follows:

□ Tombs with a single mound
□ Tombs with twin mounds
□ Tombs with three parallel mounds
□ Tombs with a joint burial mound for the king and queen
□ Tombs with double mounds on separate hills
□ Tombs with vertically placed double mounds

In addition to the burial mounds, associated buildings are an integral part of the royal tombs: the T-shaped wooden shrine (jeongjagak), where ancestral tablets are kept and royal ancestral rites performed; the stele shed, which protects the tomb stele; the royal kitchen, where food for the royal ancestral rites is prepared; the guards’ house, located southeast of the T-shaped shrine and facing the kitchen; the red-spiked gate (hongsalmun), which marks the beginning of the worship road at the southern end of the tomb area, signifying entry to the sacred realm; and the tomb keeper’s house (jaesil), where ritual equipment is kept and overall preparations are made for royal ancestral rites.

Royal tombs are adorned on the outside with a range of stone objects, including ceremonial artifacts and figures of people and animals that are placed around, and in front of, the grave mound. All serve the purpose of wishing the interred a peaceful afterlife.

Around the burial mound, on the upper platform (sanggye), a 12-angled retaining stone protects and decorates the mound. A stone fence, slightly further out, encircles the mound, and outside of this fence pairs of stone sheep and tigers face outward, their backs to the mound. Further out, a low wall shelters the components on three sides. At the open side, and in front of the mound, there is a stone table on which spirits can play. And to the right and the left of the table are stone watch pillars.

In the middle platform (junggye), a four- or eight-sided stone lantern is found in the middle with two civil servants and their horses, both in stone, nearby. In the lower platform (hagye), two military officials and their horses, in stone, are found.

The ancestral rites associated with the royal tombs are considered sacrosanct. They were practiced until the late Joseon period and into the short period of the Daehan Empire (late 19th-early 20th century).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nd during the Korean War, they were stopped, but revived afterwards (1966) as a means to preserve the ritual practices associated with the Joseon Dynasty. Sites were chosen for their proximity to the capital, Seoul, which reflects the need for kings to have close access to their fathers’ graves in order to pay due respect and honour.

In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two categories of rites: funeral rites (hyungnye) and auspicious rites (gillye). The royal tomb was constructed during the process of hyungnye. The rules for performing these ceremonies are called The Five Rites, which are detailed in two books: the “Five Rites” chapter of Sejong Sillok (Annals of King Sejong) and Gukjo Oryeui (Five Rites of the State, which was pu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When conducting the funeral of his father, the new king followed the procedures specified in the books.

In addition to the two books, palace scholars produced three different kinds of documents to mark the sacredness of the royal ancestry and magnify the departed king’s legacy: sillok (annals); uigwe (records of state events); and neungji (tomb records).

Occurence of Risk Factor : Yeojoo dam will be constructed 700 meters out of Youngneung, the tomb of Chosun dynasty's greatest king, King Sejoung. According to feng sui, Youngneung is also considered to be most auspiciously located among all Chosun Royal tombs that are designated as world heritages. If Yeojoo Dam is filled with water, the world heritage Youngneung will be only 30 meters apart from the water.
If this happens, a large amount of water may sink under the tomb which can have harmful effect on Youngneung, and the fog created due to filling of water stone figures of Chosun royal tomb would be damaged.

Korean government and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re claiming that these projects are safe without performing a proper assessment of risk.
Thus, world heritages in Korea, Jongmyo and a Chosun royal tomb, are in serious danger due to various development plans and subsequent lackadaisical responses of the government. What is worse is that even some experts are defending the government's position.
Therefore, I an earnestly asking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o send Investigation committe to perform a thorough inspection of the scene and predict potential future damages.
I hope to communicate on the details of the issue through future discussions.

2010. 07. 14.

Cultural Heritage Policy Research Institute
Head Chief : Hwang Pyu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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